Tuesday 21 March 2017

민족대표 33인의 후손들...이 친일파 자손이라 떵떵거리고 산다고?(2)

앞서 루머의 논리적 문제에 대해 설명했으니, 이번엔 팩트를 체크해 보자. 팩트 체크를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실제 팩트를 체크해서 보여주면 믿지 않고 자신의 선입견만 계속 주장하는 모습이 아이러니이긴 하지만, 그 아이러니를 타파하기 위해서라도 계속 팩트를 체크해 나갈 필요가 있다.

1편 : http://anehistory.blogspot.ca/2017/03/33-1_21.html

1992년에 시사저널이라는 잡지에서 3.1절을 기념하여 그 후손들의 현 상황을 취재한 기사가 나온 적이 있다. 혹시 진영논리를 오용하여 공격하려는 분들을 위해 미리 말해두자면, 이 시사저널은 현재의 시사저널에서 시사인이 분리되기 훨씬 이전의 시사저널로서,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잡지 중에 하나였다. 2007년 시사저널 삼성 기사 삭제 사건 이후 주요 인력들이 빠져나와 시사인을 창간하여 그 이후 시사저널은 보수적인 색채를 띠게 되었지만, 1990년대 시사저널은 진보의 끝자락에 위치한 잡지이다.

33인이 남긴 긍지와 치욕 - 시사저널 1992.03.05

제목부터 봐도 민족대표 33인을 옹호하려는 취지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상세한 내용은 사실 기사 원문을 보면 될 테고, 일단 아래에는 민족대표 33인의 후손들이 얼마나 어렵게 살고 있는지, 그들의 조상이 독립운동가였음이 어떻게 확실해 지는지 정리해서 점검해 보겠다. (참고로 이 글이 모두 옳지는 않다. 특히 33인의 행적에 대해서는 대략 조사한 부분도 있는 것 같다. 그 부분은 이 블로그의 이전 포스트와 비교하며 읽기 바란다. 예를 들어 손병희 선생의 대략적인 행적은 맞지만, 1940년이라는 꽤 늦은 시기에 사망한 것으로 잘못 기록하고 있다. 손병희 선생은 고문으로 대단히 몸이 약해져서, 일제의 정책에 의해 - 죽을 놈 내보내서 죽게 하여 비난을 희석하려는 수작 - 병보석으로 석방되어 곧 사망하였다.)

일단 이들이 부자가 아닌 것을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그들이 어디에 살고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확인해 보면 된다. 기사가 친절하게 작성되어 있지는 않지만 유독 셋방살이라는 표현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여기에서 출발해 보자. 물론 이것은 1992년의 기사이므로 현재는 달라졌을 수 있지만, 어차피 "민족대표 33인이 친일파라서 물려받은 재산으로 호의호식한다"라는 루머를 반박하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1992년 기사로도 충분할 듯하다.

1. 후손들의 1992년 당시 상황
다음은 위 기사를 간단히 요약한 내용이다.

셋방살이
이승훈 선생 후손 : 증손부 및 고손 두 형제가 셋방에 삼.
권동진 선생 후손 : 권혁방 씨(33인 유족회 회장), 권동진의 증손이며 보훈혜택도 못 받는 가운데 안양시 셋방에 삼.
박동완 목사 후손 : 손자 박재상 씨와 노모 최선옥 씨는 마포구에서 월세 살이. 노모가 허리를 다쳐도 보훈 혜택을 못 받는다고.

셋방이라는 말은 없으나 힘들게 사는 것이 확실한 후손들
김완규 선생 후손 : 손자 김몽한 씨, 셋방인지 확실하지 않으나 매월 나오는 얼마간의 연금에 의지해 힘겹게 살고 있다고.
박준승 선생 후손 : 손자 박기수 씨. 밭농사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신홍식 목사 후손 : 손자 신덕수 씨. 4살 때 부친을 여의고 고아원에서 자랐으며, 교육을 받지 못해 막일을 하며 살아왔다고.
양전백 목사 후손 : 손자 양승유 씨. 도봉구에서 연금만 바라보며 살고 있다고.
이명룡 장로 후손 : 손자 이태영 씨. 특별한 언급은 없지만 주소인 중랑구 면목동은 그 때나 지금이나 서울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중 하나다.
이종훈 선생 후손 : 손자 이성문 씨가 북가좌동에서 어렵게 산다고.
홍기조 선생 후손 : 손자 홍재웅 씨가 닭튀김 장사로 노모를 부양하며 인천의 한 아파트에 살고 있다고.

기타
신석구 목사 후손 : 손자 신성균 씨. 북한에서 얻은 교사자격증으로 교직에 종사하다가 자격을 박탈당해 법무사 일을 보고 있다고.
양한묵 선생 후손 : 고손자 양상승 씨. 잠실주공아파트에 살며 교육청 근무 중.
오세창 선생 후손 : 손자 오천득 씨. 논노패션에 근무.
오화영 목사 후손 : 양손자 오영 씨. 방배동에 살며 직업은 의사라고.
유여대 목사 후손 : 손자 유효창 씨. 충남 조치원에 살며 교직에 종사하다가 당시 보험회사에 나가고 있다고.
이종일 선생 후손 : 손녀 이장옥씨가 김포군 월곶면에 살고 있다고.
이필주 목사 후손 : 손자 이현기씨가 호주로 이민가서 살고 있다고.
임예환 선생 후손 : 증손자 임종선 씨가 영등포구 신길동에 살고 있다고.
변절자 정춘수 후손 : 강원도 양구에 살고 있으며, 해마다 3.1절이 오면 부끄러워 산 속으로 숨는다고 인터뷰했다.
최성모 목사 후손 : 독자 최경환 씨는 조선일보 기자를 거쳐 한독당에 있었고 60년 작고. 그 후손 3형제 중 막내 명기 씨만 당시까지 살아 있었다고.
김창준 목사 후손 : 월북하여 활동했기 때문에 후손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나인협 선생 후손 : 일산(당시는 신도시 개발 이전)에 살고 있다는 기록만 남아 있다.
김병조 목사 후손 : 아들 김행식 씨. 화성에서 목사로 목회 중.
변절자 박희도 후손 : 아들 박순도 씨는 치욕을 못이겨 미국으로 이민 갔다고.

사회 지도층
이갑성 선생 후손 : 이갑성 선생이 정치계로 진출한 덕에 자손도 사회 지도층에 이름을 올린듯 하다. 둘째 아들 이용희는 통일원 장관을 지냈다고.
변절자 최린 후손 : 차남이 판사를 지낸 법조인이라고 한다.
길선주 목사 후손 : 증손자 길원철 씨. 강원산업 이사로 재직 중이라고.

2. 간략한 분석

 일단 상당수의 민족대표들의 후손이 어렵게 살고 있다는 언급이 눈에 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보훈 혜택을 못 받는 경우도 많았던 것 같다.

 동아일보 사장과 오산학교 교장을 역임한 남강 이승훈 선생의 후손은 용산구에서 셋방살이를 했다. 사장과 교장의 자손이 셋방살이라니 믿어지는가?

 후손들이 친일파의 자손이라 떵떵거리고 살면서 진보 진영에 속한 설민석 강사를 공격하고 있다는 루머는 그야 말로 악성 루머임이 팩트를 통해 다시 확인되는 셈이다.

 어렵다는 언급이 직접적으로 적혀 있지 않은 경우에도, 세상에서 떵떵거리면서 살고 있을 만한 이들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장관이 1명, 기업 이사가 1명, 법조인이 1명 있고, 기자를 사회 지도층으로 굳이 본다면 기자 출신의 정당인이 1명 있다. 그나마 이 중에 한 명은 33인 중 3명의 친일파 중 한 명의 후손이다. 대부분 작은 아파트에 살면서 교직이나 보험회사, 교육청, 밭농사 등 평범한 (그리고 돈 안 되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이 오래된 기사를 다시 분석해서 올린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자신의 선입견에 근거하여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제발 줄어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특히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더욱 그런 자세를 버리고 팩트를 체크하는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다.

며칠 내로, 가장 핫이슈 중 하나인 민족대표 33인의 3.1절 당일 행적에 대한 포스트를 올려 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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