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17 March 2017

설민석 논란과 민족대표 33인

역사 강사 설민석 씨가 과거 강의에서 했던 민족대표 33인에 대한 발언이 문제가 되고 있다.

발언 내용은 "설민석 강의, '민족대표 33인' 폄훼"... 후손들 반발이라는 기사에 실려 있다. 기사에 소개된 발언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 최초의 룸살롱이 있었습니다. 태화관이라고. 대낮에 그리로 간 거야. 그리고 거기서 낮술을 막 먹습니다.... (태화관) 마담 주옥경하고 손병희하고 사귀었어요. 나중에 결혼합니다. 그 마담이 DC(할인) 해준다고, 안주 하나 더 준다고 오라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확실히 표현에 문제가 좀 있기는 하다. 설민석 강사 본인도 표현 상의 문제를 인정하고 다음과 같이 사과를 하였다. "대중의 죽음 알리려 했을 뿐" 민족대표 33인 폄훼 논란에 설민석 사과


민족대표 33인이 3.1운동 당일에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자발적으로 일본 경무 총감부에게 연락해 투옥된 점과, 탑골공원에서 만세 운동이라는 역사의 중요한 현장에 있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그 자리에서 만세 운동을 이끈 것은 학생들과 일반 대중들이었다는 사실에 대해 다양한 학계의 평가가 있고 민족대표에 대한 비판적 견해 역시 존재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건에 대한 견해일 뿐 민족대표 33인을 폄훼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단지 목숨을 걸고 일본 제국주의와 싸운 수많은 학생들의 노력과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이름 모를 대중들의 숭고한 죽음을 널리 알리고 싶었을 뿐 ... 의도와 달리 유족들에게 상처가 될 만한 지나친 표현이 있었다는 꾸지람은 달게 받겠다. 저 때문에 상처 받은 분들께 깊은 사과드린다.


사실 표현 상의 문제가 좀 있을 뿐, 설민석 강사의 주장이나 사과 그 자체에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민족대표 33인의 삼일절 당일 처신에 대해서는 역사학계 내에 다양한 시각이 공존하고 있고 비판의 여지가 있다. 긍정적으로 보는 측에서는 민족대표들이 간디의 영향을 받아 비폭력저항운동을 꿈꾸고 있었고, 자신들이 만세운동 선두에 서는 것을 통해 일제의 폭력 진압이 더 심화될 수 있음을 우려했다고 본다. 부정적으로 보는 측에서는 스스로 자수하여 잡혀 간 것이 당시 대표들의 어떤 한계였고, 실제 만세운동은 대중들에 의해 진행된 부분이 더 크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민석 강사의 사과에 부족한 부분이 보인다. 민족대표 33인의 이후 활동에 대해 상세히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네티즌들의 오해로 나타났다. 댓글을 쓴 네티즌들의 90% 이상은 민족대표 33인 중 만해 한용운을 제외한 32인이(또는 최소한 절반 이상이) 일제에 부역한 변절자라고 주장했고, 그러한 주장들이 많은 찬성을 얻어 댓글 상위권에 랭크되었다. 실제로는 민족대표 33인 중 변절한 사람은 3인 뿐이며, 보조 요원이었던 15명을 더해 민족대표 48인으로 범위를 넓히더라도 변절자는 5인에 불과하다. 참고 : 3·1운동 이끈 민족대표 대부분 변절했다고? (그 외 위키백과, 나무위키 등의 민족대표 33인 항목을 찾아보면 민족대표들의 행적들이 상세히 나와 있다. 그 외 친일이 의심되었던 이갑성의 경우도 현재는 여러 검증에 의해 친일파가 아님이 확인되었고 처음 문제를 제기했던 민족문제연구소도 친일파 의혹을 철회한 상황.)


필자를 포함한 소수의 인원이 열심히 그들의 오해를 풀어주고자 했으나, 다음 포탈의 글 작성 수 제한으로 인해 더 이상의 활동이 불가능한 상황이며, 몇 시간이 지나자 다시 처음처럼 32인의 변절자 주장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형국이다. 만약 자신의 글로 인해 촉발된 이 어이없는 상황을 설민석 강사가 알고 있었다면, 그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해명했어야 한다. 물론 사과문에서 설민석 강사가 민족대표 33인의 이후 행적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음을 에둘러 언급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날 그 사건에 대한 견해일 뿐이지, 민족대표 33인을 폄훼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또한 그 날의 사건만으로 민족대표의 다른 업적들이 희석되거나 가려져서도 안 되며, 그분들을 추모하여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계신 유족 여러분들께 상처가 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출처 : 설민석 페이스북


결국 문제는 설민석 강사의 의도와는 달리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민족대표의 다른 업적들이 희석되거나 가려지는 수준이 아니라 친일파 매국노 일제 앞잡이 수준으로 비하 당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게다가 역사에 대하여 생각할 때 역사적 사실을 중시해야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네티즌들은 필자 및 일부의 네티즌들이 제시하는 근거를 무시하거나 폄하하면서 그들만의 주장을 계속 펼쳐 나가는 몰지각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그가 이 글을 볼 가능성이 매우 적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 다시 설민석 강사에게 촉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도된 진실을 바로 잡아 달라. 일생을 고난 속에서 살아간 독립운동가들과 그 후손들이 매국노와 매국노의 자손으로 오도되는 이 서글픈 현실에 대해 다시 입을 열어 달라. 당신의 잘못이 아닐 지라도, 당신이 해결해야만 한다.

민족대표 33인과 친일파 논란에 대한 팩트 체크
1편 / 2편 / 3편

민족대표 33인의 후손들에 대한 논란팩트 체크
1편 / 2편


덧 : 설민석 강사의 사과문으로 보아 그가 33인의 이후 행적을 긍정하고 있다고 여겼으나, 사실은 강의에서 "민족대표 대부분은 1920년대에 변절했다."라는 주장을 펼친 것이 확인되었다. 위에도 언급했듯이 이 주장은 전적으로 거짓이다. 결국 이 주장으로 인해 소송까지 당하게 되었는데, 설민석 강사가 결자 해지의 정신으로 진정하고 진실된 사과를 하고, 후손들은 소송을 취하하는 것으로 좋게 마무리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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